*뉴스레터 [스타트업] 일부발췌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 “텀블벅, 이지앤모어... 뼈아픈 조언의 순간들”
“소풍벤처스에서 일하는 한상엽입니다. 소풍벤처스는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엑셀러레이터예요. 2008년 이재웅 대표님이 설립했고요. 원래는 자기 자본만 활용해 투자하다가 재작년부터 회사를 스핀오프했어요. 한 100여 회사 투자했어요.”
소풍다운 투자를 꼽는다면요?
“동구밭이예요. 발달장애인을 고용해 수제 비누를 만들어요. 소풍은 2016년에 투자했어요. 제가 투자업을 시작한뒤 첫번째 투자이기도 해요. 동구밭은 발달장애인 40여 분 고용하고 매출 100억 넘었어요. 아모레퍼시픽이나 LG생건에도 비누 납품해요. 글로벌 수출도 해요. 국내에선 고급 수제 비누를 월단위로 거의 10만 개 가까이 생산할 수 있는 유일한 기업이고요. 고급 수제 비누는 작다면 작은 시장이면, 참 대단하죠. 국내 1위입니다. 첫 투자 결정했을때는 이렇게 잘 될지 몰랐어요. 그땐 BM(비즈니스모델)이 거의 없는 상황이었고 단지 창업가의 ‘발달장애인을 고용하겠다’는 취지와 의지가 워낙 강력해서 그 의지를 보고 투자결정했어요. 창업자와는 투자할때 피봇 하기로 약속했죠. 비누냐 수경 재배냐를 놓고 고민하다가, 비누를 택했죠. 이유는 초기 비용이 덜 드니까, 비누부터 해보자고 했어요.”
“사업을 정말 잘해서 2016년 이후로는 투자를 받은 적이 없어요. 이익이 나니까요. 매출은 매년 2배씩 성장했고 올해도 성장세는 유지될 것 같고요. 동구밭이 의미있는 이유요? 물론 장애인 의무 고용제와 같은 정부 제도를 잘 활용한 측면도 있지만, 그것보단 동구밭은 시장에서 제품력으로 인정받은 회사거든요. 품질이 엄청나게 뛰어난데 납기일도 잘 맞추는데다 또 대량 생산 가능한 시스템까지 갖췄죠. 직장인으로서 발달장애인의 강점은 반복 작업을 잘해요. 균질한 작업요. 올해 상반기에 투자 라운드 진행하는데 밸류는 아주 높게 나올 겁니다. 동구밭은 심지어 배당도 했어요. 이익이 많이 나서요. 사실 저희도 스타트업이 배당이란게 맞나, 갑론을박했어요. 배당한 스타트업은 처음 봐서요. 배당으로 투자금 회수한 특이한 케이스죠. 갑론을박 끝에 배당받고는 그 돈은 성동구 자활기금으로 기부했어요. 이재웅 대표님의 뜻이었죠.”
소풍에서 미디어를 빼놓을 순 없죠.
“미디어에 투자한 전통이 컸죠. 이재웅 대표님이랑 강정수 대표님이 했던 전통요. 퍼블리나 스티비 등에 투자했죠. 뉴미디어에 관심가진 배경은 명확해요. 임팩트를 얘기할때 결국 소비자 내지는 시민의 의식이나 행동을 바꾸는 훌륭한 매체들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레거시 미디어는 레거시대로 갈 것이고 뉴미디어는 뉴미디어대로 가야된다고 봅니다. 소풍의 색깔입니다. 퍼블리는 시리즈B 라운드도 잘 마무리했고 소풍은 일부 매각했습니다. 투자 원금을 넘는 이익 실현을 했죠.”
“앞으로 소풍의 방향을 얘기하는 포트폴리오사는 리하베스트입니다. 소풍의 지향점과 맞닿아있는 곳입니다. 리하베스트는 음식 부산물을 활용해 음식 원재료를 만듭니다. 푸드 업사이클링요. 오비맥주랑 보리 부산물을 재가공해 보리 원재료 내지는 에너지바나 그레놀라 같은 식품 만드는 작업을 하고 있어요. 소풍이 올해부터 전사적으로 집중할 영역은 기후입니다. 기후라고 해도 워낙 방대하니까, 모든 영역을 커버하는 건 불가능하고 그래서 기후와 연결된다는 전제를 깔고 농식품, 순환경제, 신재생에너지 세가지 축을 보고 있어요. 예컨대 글로벌 단위에서 보면 탄소 배출의 3분의 1이 농식품 영역에서 배출됩니다. 전체 음식물의 3분의 1은 또 폐기됩니다. 이 이슈를 풀고 싶습니다. 그러면 탄소 문제도 해결하고 기후 문제의 해법 단초도 마련할 수 있고, 무엇보다 시장 기회도 있습니다.”
“기후 문제 해결에 제일 중요한 건 기술입니다. 근데 기술이 추동하는 변화가 시민의식 변화까지 와야하는데, 그 과정에서 소풍이 투자한 퍼블리와 같은 뉴미디어가 역할을 하는거죠. 예컨대 뉴닉 같은 곳에선 기후 문제를 많이 다룹니다. 뉴미디어들이 사회적 가치나 기호 이슈들에서 기민하게 대응할 수 있지 않을까 봅니다. 실제로 그렇게 가고 있고요.”
창업가에게 잘못된 조언하고 후회한 경험은요
“뼈 아픈 케이스 몇 개 있죠. 텀블벅요. 작년에 아이디어스에 매각했습니다. 지난달엔 아이디어스 대표님이 텀블벅 대표를 겸직하기로 했고, 락업 기간이 풀린 텀블벅 창업가는 그만뒀죠. (매각) 당시 창업가가 너무 지쳐서, 당장 내일 사업을 그만둬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의 상황이었어요. 힘들어하는 상황이 몇 달째 변화가 없었어요. 그래서 팔자는데 동의했죠. 매각가에 궁극적으론 소풍도 동의한 셈이죠. 돌이켜보면 그때 동의 안 했어야 되는 것 같아요. 당시엔 대표가 너무 힘들어 하니까, 마음이 약해져 그랬긴 했지만요.”
“이지앤모어라고 가슴 아픈 사례도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월경컵 합법화시킨 스타트업이예요. 직원 5명일 때 식약처의 서류 제출하고 식약처가 요구하는 모든 기준을 맞춘거죠. 그전까지는 월경컵은 해외 직구만 가능했었어요. 이지앤모어 창업팀 대단하죠. 당시 창업자는 커머스하고 싶어 하셨어요. 저희가 반대했어요. 커머스 너무 많으니, 오히려 데이터 드리븐으로 가자고, 월경 데이터를 모아서 맞춤형으로 정보 제공하고 솔루션도 제공하는 형태로 가자고 조언했어요. 몇 년 지난 지금 보면, 왜 결과값을 확인하는 데 시간이 걸리잖아요, 결과적으론 생리대나 월경용품을 생산해 배송하는 다른 회사들이 오히려 규모 있게 성장했어요. 이지앤모어는 많이 휘청했고 현재는 완전 처음부터 리빌딩 중입니다.”

소풍벤처스 한상엽 대표/루트임팩트 제공
반려동물 스타트업엔 투자 안한다는데 이유가 있어요?
“작년에 소풍의 한 팀당 평균 투자 금액이 1.7억이니까 큰 돈은 아니죠. 작아서 그런가, 투자 결정할 때 내부 토론이 쎈 경우가 많아요. 토론 속에서 결론을 내는데, 소풍은 방침상 반려동물에는 투자 안 해요. 이유는 전에 반려동물 사료를 하는 스타트업에 투자하면서 내부적으로 너무 고통스러운 과정을 거쳤거든요. 동물권보다 인권이 훨씬 중요하다는 반론이 있었어요. 인권과 관련된 문제도 해결을 못하는 마당에 동물권까지 커버를 하는 게 맞냐, 다른쪽에서는 동물 반려동물은 이제 가족의 문제다, 단순한 동물로 볼 수도 없다, 동물권도 중요하다고 논쟁이 붙은 거에요. 둘 다 맞죠. 틀린 얘기도 아니고. 너무 아규가 심해서 회사 방침상 이제 반려동물 하지 말자, 이것 말고도 우리가 논의해야 될 주제들도 워낙 많고 투자할 수 있는 영역도 많으니까라고 결론내렸죠.”
치열한 논쟁의 다른 사례는요?
“여성들을 위한 성지식 플랫폼, 아루라고 하는 서비스인데요. 참고로 저는 찬성 입장이기는 했어요. 뭐냐면 여성들로 하여금 야한 분위기를 느끼게 만드는 여성들을 위한 콘텐츠인 거예요. 여성들한테 성 지식도 갖다주고 성인용품도 여성들 관점에서 제공하고요. 한쪽 주장은 국내 성관련 플랫폼 대다수가 남성 위주고, 성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 어찌 보면 성차별의 시작이다란거고, 반대 쪽에서는 이런 플랫폼이 잘 되는게 여성의 주체성이라든가 여성에게 주어지는 부당한 대우나 격차를 줄이는 데 진짜 기여하는 게 맞냐, 그걸 입증할 데이터가 있느냐는 거죠. 우선순위라면 오히려 여성들에게 더 좋은 일자리를 제공한다든가, 육아 문제를 해결한다든지 이런 방식이 훨씬 더 맞는게 아니냐는거죠. 아슬아슬하게 통과했어요.”
SM, 무신사 등 큰 기업의 등장은 성수동 문화를 바꿀까요.
“성수동은 진짜 독특하다고 생각해요. 지금 크래프톤, SM, 무신사 같이 큰 기업들이 많이 오고 있는데 저는 그 기업들이 이 분위기를 좋아하기 때문에 오는거라고 보거든요. 이 지역을 점령하겠다, 여기를 바꾸겠다가 아니라 독특한 분위기나 문화를 좋아하고 이것이 자신들이 지향할 문화에 가깝다 생각해 온거라고 봐요. 성수동은 테헤란로와 달리 비영리 기관들이 많아요. 영리, 비영리가 중요하지 않고 임팩트가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사람들이 모여있는 곳이기 때문에 단순하게 영리만 보고 움직이는 문화와는 다른 분위기가 있을 거에요.
임대료가 비싸져도 헤이그라운드와 심오피스와 같은 공간들이 굳건히 유지를 하고 있어서 이런 앵커 플레이어들이 구심점 역할을 해주고 있죠. 든든합니다. 전 세계에 이렇게 민간 자본으로 이런 밸리는 만든 경우가 잘 없잖아요. 그래서 정부 정책에 의해서 좌지우지될 영향력도 매우 적죠. 심지어 루트임팩트 주도로 여기 기업들이 모여서 어린이집도 만들었어요.”
[출처]
성호철 기자, "[스타트업] 넷스파의 나일론, 이지앤모어의 월경컵, 비투비의 성수동, 그때 그형" 뉴스래터 [스타트업], 조선일보, 2022.01.07,
[스타트업] 넷스파의 나일론, 이지앤모어의 월경컵, 비투비의 성수동, 그때 그형 - 조선일보 (chosun.com)